아빠는 새벽에 인기척을 느껴 눈을 떴습니다. 어제 부터 속이 메쓱거린다던 엄마가 식탁의자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지요.
"왜그래? 당신.... 어디 아픈거야?"
"배가 아프네... 심상치가 않은게 아기가 나오려는 것 같아..."
"안되겠다, 병원갑시다."
주섬주섬 엄마가 입원해서 필요한 물건만 딱 챙겨서 급하게 집을 나오려는데 엄마는 미동도 하지 않고, 자리에 섰습니다. 다시 진통이 시작되었나 봅니다. 아빠는 조금 기다렸다가 진통이 멎으면 가자고 기다렸습니다. 재빠르게 먼저 내려온 아빠는 엄마가 추울까봐 시동을 걸고, 히터를 틀어놓았습니다. 잠시 진통이 가신 틈을 타 아빠는 엄마를 부축하여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달렸습니다.

간호사는 엄마를 데리고 분만실로 들어갔고 아빠는 잠시 밖에서 기다렸습니다.
20분 정도 지나자, 분만실 안에서 아빠를 찾습니다. 아기가 나오는 상황이 50% 정도 진행되었다고 하네요.
엄마가 누워있는 분만실을 들어가니, 벌써 콧잔등에는 식은 땀이 송글송글 합니다.
아빠는 힘들어하는 엄마를 보고 어쩔줄 몰라 분주하기만 할 뿐 아무 것도 도와줄 수 없는 것에 안타까워했죠.
몇 번의 내진을 하고, 아빠도 분만실 밖을 들락거리기를 몇 번 하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간호부장 선생님이,
"80% 정도 진행되었으니, 10~11시면 분만할 것 같네요. 아기 낳는 거 보실꺼죠?"
"아! 물론입니다."
약간 상기된 아빠는 성큼성큼 분만실로 들어갑니다. 엄마는 아기를 만날 준비를 마쳤지만, 여전히 힘들어 합니다.
일정한 간격으로 오던 진통도 점점 잦아지고....의사선생님, 간호사...
모두 아기의 탄생을 준비하고 엄마는 혼신을 다해 아기가 세상에 나오는 것을 도웁니다.
하지만, 아빠는 엄마의 손을 꼭 잡아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도와줄 것이 없습니다.
"마지막입니다!! 한 번만 더 힘을 쓰세요!"
의사선생님의 말에 엄마는 있는 힘껏 힘을 씁니다. 엄마를 잡아주던 아빠의 손에도 힘이 들어갑니다.
아빠가 옆을 보니, 아기의 머리가 보입니다. 순식간에 아기의 몸이 엄마로 부터 빠져나오더니
곧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10시 49분....엄마도 아빠도 마주보며 눈물을 글썽입니다.
"고생했어요, 여보... 정말 고생 많았어.."
엄마는 지쳐 고개만 끄덕였어요....
"아버님께서는 이쪽으로 오셔서 아기 탯줄 잘라주세요~"
간호사가 아빠를 찾습니다. 아기도 지쳤는지 숨을 헐떡이고 있습니다. 아빠가 아기의 탯줄을 잘라주며 인사합니다.
"반갑다... 수고했어.."
간호사는 아기를 잘 싸서 아빠에게 안겨주며, 엄마이름, 아빠이름, 출생시간, 아들을 낳았음을 꼼꼼히 체크하여 아빠에게 확인시켜 주고는 신생아실로 데려가라고 합니다. 밖에서 마음 졸이며 기다리시던 외할머니께서도 아기를 반갑게 맞이 합니다.
갑자기 눈을 떠 아빠를 빤히 쳐다보는 아기...
"어?! 장모님 아기가 눈을 뜨네요!"
방금 태어난 아기가 눈을 뜬 모습을 처음 본 아빠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습니다. 너무나 신기하고 기뻤기 때문이죠.^^ 아기를 신생아실로 데려다 주고, 아기의 체중을 재보니 3.47kg.

아기를 신생아실에 데려다 준 아빠는 엄마가 보고 싶었습니다. 다시 분만실로 들어가려는데, 간호사가 밖에서 더 기다리라고 하네요.
"엄마 태반이 아직 안나왔어요... 태반까지 다 나와야 순산인데... 배속에 딱 붙어서 잘 나오지 않아 지금 의사선생님이 시술중이니 조금 기다리세요."
"태반이요?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나요? 괜찮겠죠?"
의외의 일에 아빠와 외할머니는 엄마가 걱정되었습니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요즘은 의술이 발달해 그렇게 심각하거나 어려운 상황은 아니라고 하더군요.... 얼마나 지났을 까.. 12시가 조금 넘어 엄마가 침대에 누운 채로 분만실을 나와 마취를 위해 수술실로 들어갑니다. 아빠는 걱정스런 눈빛으로 엄마를 바라봅니다.
"마취하고 태반 꺼낸다니까.... 하나도 안아프데요.. 너무 걱정 말아, 아주 간단한 거니까.. 수술도 아니고, 마취만 하고 꺼내면 된데요... "
엄마를 안심시키려 이렇게 말은 했지만, 아빠는 걱정이 됩니다. 아기는 잘 낳았는데 생각치도 못한 태반이 안나와서 고생을 할 줄을 꿈에도 생각치 못했기 때문입니다.
1시간 정도 지나고, 엄마가 나왔습니다. 이젠 지친 기색조차 찾을 수 없을정도로 파김치가 되었습니다. 아빠는 엄마의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는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병실로 옮겨진 엄마는 아직 마취가 다 풀리지 않았는 지 눈을 반쯤뜨고는 아빠를 쳐다봅니다.
"나.. 자꾸 눈물이 나고.. 너무 서러워...우울해..."
이내 참고 있던 울음이 터졌습니다. 10달 동안 고생하고, 아기 낳으면서 또 고생하고, 온몸이 쑤시고, 출산 때 흘린 피때문에 보고있기만 해도 너무나 애처로운 엄마는 울음을 그치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무엇이 그렇게 서럽고 그토록 눈물이 나게 했을까요...
비록 아빠가 옆에 있긴 했지만, 처음 겪어보는 산통과 그로인한 두려움, 차가운 병원냄새, 얼룩진 환자복, 수술실로 들어가던 모든 것이 엄마에겐 두렵고, 힘든 과정이었을 겁니다. 반나절을 오랜 고통으로 몸을 틀던 엄마는 그렇게 서럽게 울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잠든 엄마를 보고 있노라니, 아빠도 울컥 뜨거운 것이 올라옵니다... 소리없이 눈물을 훔치고는 춘천에 계신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분만실 들어갈 때 연락을 받으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엄마와 아기가 건강하게 큰 일을 치루었다고, 자연분만으로 아기가 태어 났다는 소식에 엄마가 장하고 기특하다고 칭찬과 기쁨을 전하셨습니다.
병실에서 엄마를 다독이고 있을 때 외할머니와 친구분이 오셨어요. 엄마의 안부를 묻고, 축하와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아기가 보고 싶은 마음에 두 분은 들떠 계셨습니다. 아빠는 두 분을 모시고 신생아실로 갔습니다. 아기는 오늘 재왕절개로 태어난 친구와 예정일보다 한 달이나 빨리나온 친구와 나란히 몸을 말리고 있었습니다. 간호사가 아기를 데려와 아빠를 확인하고 인사시킵니다. 말똥말똥 눈을 뜨고 아빠와 외할머니 그리고 외할머니 친구분을 번갈아가며 쳐다보던 아기는 자신만의 개인기를 보여줍니다.
처음엔 말똥말똥 쳐다만 보더니 갑자기 울어댑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딸꾹질을 두 번 하더니 이내 하품을 길게 합니다. 그리고는 살짝 입고리를 치켜올려 웃더니 이번엔 재채기를 합니다. 일종의 '퍼포먼스'죠^^

비록 아빠와 아기는 유리벽으로 막혀 안아주지도 못했지만, 아기는 아빠의 따뜻한 사랑을 느꼈을 겁니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낯선 세상을 보는 아기를 보아도 엄마와 아빠는 아직도 부모가 된 자신이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건강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거라... 사랑한다.